박찬욱 감독은 왜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를 선택했을까?

복수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다

박찬욱 감독은 오랜 시간 동안 ‘복수’를 영화의 중심 주제로 다뤄왔습니다.

그는 단순한 감정 해소를 넘어, 복수의 윤리와 존재론적 고통을 탐색해왔죠.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라는 미국 범죄소설의 거장의 작품을 택했다는 것은
단순한 장르 실험이 아닙니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이른바 ‘복수 3부작’을 통해

그런 박찬욱이 2025년 신작 <어쩔 수 없다>를 통해

그 선택엔 공통된 인간관, 복수에 대한 철학,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이 숨어 있습니다.



📚 웨스트레이크와 박찬욱, 복수를 말하다

1. 복수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다

웨스트레이크가 창조한 ‘파커’는 배신을 당해 복수를 결심하지만, 그 과정엔 분노도 정의도 없습니다.
그는 그냥 되돌려받고 싶은 것이 있을 뿐입니다.

박찬욱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대수(올드보이)는 딸을 빼앗긴 감정에 복수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랬는가”를 알고 싶고, 균형을 회복하고 싶을 뿐이죠.

→ 둘 다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야 질서가 회복된다’는 논리를 따릅니다.

2. 인물은 ‘영웅’도 ‘악인’도 아니다

웨스트레이크의 주인공들은 범죄자지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적이고, 때로는 어설프고, 우습기도 합니다.

박찬욱의 인물들도 선악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들입니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고, 구원받고 싶지만 계속해서 무너집니다.

→ 두 작가는 ‘이해할 수 있는 악’을 통해 인간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3. 복수는 해소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웨스트레이크의 인물들은 복수를 통해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세상에 대한 태도를 증명합니다.
박찬욱의 인물들도 복수는 정체성을 되찾는 수단입니다.
상처받은 존재가 복수를 통해 자신을 회복하려는 시도, 그것이 핵심입니다.


🎬 <어쩔 수 없다>는 그 철학의 교차점

박찬욱 감독은 <어쩔 수 없다>를 통해 웨스트레이크의 차가운 복수 철학에 자신만의 심리적 밀도를 입힐 것입니다.

  • 감정은 절제되고
  • 인물은 말이 없고
  • 폭력은 냉정하며
  • 구조는 정교할 것입니다

그 결과물은, 웨스트레이크의 세계와 박찬욱의 시선이 만난 가장 철학적인 복수극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을 쓰기 시작한 게 17년 전쯤인 것 같다. 긴 시간 제가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작품을 드디어 촬영까지 마치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열심히 후반 작업을 해서 참여한 모든 사람이 보람을 느끼는 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전했습니다.

이병헌은 “감독님과 오랜 친구처럼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시간이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면서 “이번만큼 많이 기대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이 작품은 단지 원작을 각색한 영화가 아닙니다.
박찬욱 감독이 17년 동안 마음에 품고,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이야기이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라는 작가와의 감정적 교감이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 그래서 왜 웨스트레이크인가?

  • 두 사람 모두 복수를 윤리가 아닌 질서로 본다
  • 감정보다 논리와 원칙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창조한다
  • 정의롭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으로 복수를 해석한다

박찬욱 감독은 단순히 범죄소설을 영상화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웨스트레이크의 세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낸 셈입니다.


🎞️ 마무리하며…

“왜 그랬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 짧은 대사 안에 웨스트레이크의 서늘한 세계와
박찬욱 감독의 복잡한 감정이 겹쳐 보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그 둘의 만남이 만들어낸
가장 냉정하고, 가장 뜨거운 복수극이 될지도 모릅니다.